3/20/2008

칸 국제광고제 새 흐름… 아이디어 그 이상의 가치를...

흑인 초등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웃고 있다. 아이들 뒤에는 커다란 옥외광고 간판이 서 있고, 그 위에는 태양이 작열 중. 간판에는 ‘은행 하나가 사람들에게 진짜 힘을 준다면?(What if a bank really did give power to the people?)’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 광고의 제목은 ‘Power to the People(사람들에게 힘을)’. 광고주는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NEDBANK’. 은행이 대체 무슨 힘을 준다는 걸까? 답은 옥외광고판 자체가 태양열 발전시설이라는 데 있다. 광고판에 붙은 패널은 태양열을 모아 전기로 발전시키고, 이렇게 생산된 전기는 인근 초등학교 식당에 공급된다. 전기로 아이들은 음식을 데워먹는다. 이 옥외광고판은 남아공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17일 개막한 제54회칸 국제광고제의 흐름은 ‘공익’, 혹은 ‘광고의 사회적 책임’이다. 옥외광고 부문 그랑프리로 선정된 ‘Power to the People’이 대표적인 예이다. 심사위원들은 “이제 광고는 아이디어 그 자체로는 충분치 않다. 아이디어 그 이상의 가치를 담아야 한다”며 그랑프리 작품은 광고를 뛰어 넘어 도움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평가했다.

이번 칸 국제광고제 세미나에 언뜻 ‘광고쟁이’들의 이해관계와는 무관한 사람들이 보이고 있는 것도 ‘공익’이라는 흐름을 더욱 뚜렷하게 한다.

환경운동가로 ‘전직’한 앨 고어(Gore) 전 미국 부통령은 광고 대행사 ‘Y&R’의 초청으로 22일 정치적인 문제를 넘어 이제 기업의 문제로 부각된 ‘지구 온난화’ 관련 강연을 한다. 이에 앞서 광고대행사 운더만(Wunderman)은 지난 19일 ‘유행 그 이상의 가치, 윤리와 마케팅 그리고 현대의 브랜드’라는 주제로 공익 마케팅(Cause Marketing)에 대한 세미나를 연다.

올드미디어의 대명사 ‘옥외광고’ 부문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 이번 광고제의 가장 큰 뉴스. BBC가 뉴욕 ‘타임스퀘어’에 세운 대형 선간판이 단연 화제. 이 선간판에는 뉴스 사진이 올라오고, 이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다. 예를 들면,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사진을 띄워놓고 ‘점령군(occupiers)’인지 ‘해방군(liberators)’인지에 대해 투표를 하는 방식이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투표를 하면 실시간으로 집계가 나온다. 인터넷에서 특정 이슈에 대해 찬반을 묻는 것과 같은 방식. 이 광고는 그랑프리의 다음 단계인 ‘금상’을 받았다.

USA투데이는 “지난해 미국의 전체 광고시장 규모는 2005년 대비 4% 성장한 1496억 달러였던 반면 같은 기간 옥외광고 시장은 광고시장 평균의 2배가 넘는 9%가 성장, 38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 출품작 중에는 농심기획의 ‘추파춥스(사탕)’ 광고가 옥외광고 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막대사탕인 추파춥스를 입에 문 복어가 그 맛에 깜짝 놀라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면서 그 자체로 마치 커다란 추파춥스 사탕 모양이 된다는 광고.

칸 국제광고제에 참석한 광고업체 관계자는 “우리가 전지현 같은 유명 연예인들을 섭외하기 위해 전화를 돌리고 있는 동안 국제 광고시장의 흐름은 상식의 틀을 깨는 기발함을 넘어 공익적 가치까지 구현하는 수준으로 멀찌감치 앞서가 버렸다”고 말했다.


[칸(프랑스)=염강수 기자ksyou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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